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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 생전 일화

CANS 2024. 11. 13. 21:45

박정희 전 대통령 생전 일화

01

논밭도 없는데 말이야.

논밭을 수천만 마지기를 없애가지고 자동차도 없는데 고속도로를 만들어.

"저런 미친놈이 어디 있나?"

박정희 전 대통령 욕을 포대기로 하고 김대중, 김영삼이 경부 고속도로 건설 반대한다고 불도저 앞에 가서 드러누웠어.

그거는 먼 미래를 모르는 거야.

자동차도 없고 공장도 없는데 무슨 포항제철 공장을 만드냐고 이런 미친 사람이 어디 있냐고 전부 데모했어.

하지만 그것을 만들어 놓고 죽어야 우리 후손들이 나중에 경제 10위 나라가 되는 거야.

거기에서 우리가 먹거리를 찾게 되는 거야.

그게 국가의 지도자야!

어디 도둑놈의 새끼들이 그 사람 욕을 하고 자빠졌어?

02

박정희 전 대통령은 동독, 서독 시절 상대적으로 부유했었던 서독을 보며 남한도 그렇게 부유해지길 바랐다.

지난 1964년 서독 시찰을 갔었던 박정희는 아우토반을 보게 된다.

실제로 아우토반을 달리다가 박정희는 차를 세우게 하더니 수첩을 꺼내서 서울에서부터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선을 잇는 그림을 직접 그리며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당시 아시아 최고 경제 강국이었던 일본도 1963년에 고속도로를 개통한 시점에 5년도 안 돼서 한국에서 저렇게 한다고 하니 먹고 지낼 것도 없는 마당에 고속도로가 무슨 말이냐고 하며 여야 정치인들과 언론의 반대도 극심했었다.

박정희는 경부 고속도로 건설에 진심이었다.

박정희는 실제 건설 현장까지 직접 시찰했으며 공사를 시작한 지 약 2년 5개월 만인 1970년 6월 30일 완공할 수 있었다.

이런 계획과 노동자들의 희생 덕분에 고속도로 완공 후 서울에서 부산까지 이동 시간은 15시간에서 4시간 30분으로 단축됐다.

이것은 곧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경제 성장의 발판을 이루는 초석이 됐다.

03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 열여덟 해 동안 1인당 국민 소득이 100달러 수준에서 1000달러 이상 10배로 성장한다.

해외 원조에 의존하던 나라가 산업화게 성공했다.

중화학공업, 제철, 자동차, 금속산업 등이 그때 이뤄진 것이다.

박정희 정부 때는 땅에 붙어 있었던 한국 경제를 공중에 띄워 이륙시킨 공로를 이뤄낸 기간이었다.

한국 사회는 맨날 북진통일, 반공만 외쳤던 나라에서 그것보다 더 위에 북한을 능가할 수 있는 경제력과 국민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산업을 갖춘 자본주의 발전 국가로 올라서게 된다.

04

육영수 여사가 총에 맞는 순간 박정희는 경호원들을 향해 총을 쏘지 말라고 소리쳤다.

경호원들이 즉각 대응 사격을 하려고 했지만 관객도 쏜 총에 맞지 않을까 우려돼서 그런 것이다.

박정희는 쓰러져 있는 육영수에게 어서 가 보라고 경호원에게 지시한다.

얼마 후 남은 연설문을 다 마치고 나서 병원에 도착했지만 육영수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박정희는 울고 있는 비서관의 목을 끌어안아서 대성통곡했다.

며칠 후 운구 행렬을 떠나보낸 다음 날 박정희는 육영수를 모신 제2 부속실 직원들을 불러서 육영수가 했었던 업무 중 대통령이 할 일과 박근혜가 할 일을 정리해서 올리란 지시를 한다.

박정희는 자신의 아내를 잃었지만 대통령으로서 공과 사를 명확히 구분해서 업무에 차질이 생기지 않게 한 것이다.

육영수 서거 후 달라진 점은 박정희의 퇴근 시간이 더 앞당겨졌다는 점.

대통령이 퇴근을 하지 않으면 직원들이 퇴근을 못하니깐 일단 2층으로 퇴근하고 나서 밤에 다시 내려가서 밀린 서류 결재 같은 일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 생전 일화